< 김쌤의 500자 이야기 > 도량(度量)
< 김쌤의 500자 이야기 > 도량(度量)
조선 중기에 학자이면서 의술에 뛰어난 허목(許穆,1595 선조28~1682 숙종8) 선생님이 계셨습니다.
호는 미수(眉叟)로 정치와 문장에 뛰어나 우의정까지 지내신 분입니다.
그리고 같은 시대에 유명한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1607 선조40~1689 숙종15)선생님도 계셨는데,
두 분은 남인(南人)과 서인(西人)으로 갈려 언제나 대립하는 사이였습니다.
어느 날 송시열이 병이 들어 용한 의원과 온갖 좋은 약 다 써보았지만, 백약이 무효였습니다.
송시열은 비록 허목이 정적(政敵)이지만 자기 병을 고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서인들과 집안 모두 반대에도 불구하고 허목에게 사람을 보내 처방전을 구합니다.
허목이 써준 처방전을 받아보니 염려한 대로
비상(砒霜)과 더불어 몇 가지 극약(劇藥)을 함께 섞어서 달이도록 적혀 있었습니다.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송시열은 적힌 그대로 약을 달이라고 지시합니다.
집안사람들은 할 수 없이 처방전대로 하였지만, 만약에 대비하여 비상만은 조금 적게 넣었습니다.
약을 먹은 뒤 송시열의 병이 나았습니다.
감사의 뜻을 표하기 위해 집안사람들이 찾아가자 허목이 물었습니다.
“처방전대로 약을 지어 드렸는가?”
“네, 그렇지만 비상만은 조금 적게 넣었습니다.”
허목은 웃으며 말했습니다.
“그 정도라도 넣었으면 앞으로 사시는 데 큰 문제는 없겠네.”
정적을 제거할 좋은 기회였지만 살 수 있는 약을 기꺼이 지어준 허목,
병을 이유로 자기를 헤치지 않을 것이라 믿고 약을 마셨던 송시열,
두 분의 넓으신 도량(度量)이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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