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김씨는 대보공(大輔公) 휘 알지(閼智)의 후 신라계 김씨로 경순왕의 왕자대에 분파하여 울산을 관향으로 하고 있다. 시조 학성부원군은 경순왕의 제2왕자로 망국의 한을 품고 은둔한 이후 13세까지 출사하지 않았다.

 

14세 문숙공 휘 환(環)이 비로소 출사하여 삼중대광 광록대부에 오른 이래 누대 추요직에 오르고 학성군의 군호를 승습하였다.  17세 흥려군 휘 온(穩)이 위화도 회군 때부터 태조 이성계를 도와 조선 개국에 공을 세웠으나 태종조의 정쟁에 휘말려 화를 입자 정부인 민씨께서 솔가하여 전라도 장성으로 낙남하였다. 이로부터 장성을 새 본거지로 삼아 가문이 융성하고 전라ㆍ 경상ㆍ 충청도의 여러 고을에 진출하여 터를 넓혔다. 낙남 후 가문의 대세가 산림(山林)에서, 명리를 멀리하고 오로지 학문과 존심양성에 주력하였다.

 

그러면서 나라의 어려운 고비마다 분기하여 의를 지키며 충절을 다하였으니, 단종의 참변, 임진왜란, 병자호란, 한말의 국난에 의인 열사가 무리지어 나왔다.

 

그러는 중에도 일각에서는 경세(經世)에도 뜻하여 문ㆍ무과를 거치거나 음사 또는 은일로 출사한 인사가 다수 나왔다. 특기할 일은 장성에 터 잡은 지 5대에 문묘종향의 대현이 나왔으니 바로 문정공 하서선생이다.

 

근ㆍ현대에도 가운이 크게 떨쳐 제2대 부통령(인촌 김성수), 초대 대법원장(가인 김병로), 삼양그룹 창업회장(수당 김연수), 국무총리(남재 김상협), 국회부의장(백우 김록영), 대통령 경제수석( 김종인), 대한상공회의소회장(김상하), 동아일보회장ㆍ고려중앙학원이사장(김병관), 예술원회원(조각가 김영중), 육군중장(김희중) 등이 배출되었으며 현하 입법ㆍ 사법ㆍ 행정 각 부와 학계, 문화계, 산업분야 및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수많은 인재들이 약진하고 있으며 전, 현세대보다 더욱 촉망되는 다음 세대들이 뒤를 잇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