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쌤의 800자 이야기 > 최치원의 둔세시(遁世詩)
< 김쌤의 800자 이야기 > 최치원의 둔세시(遁世詩)
해인사(海印寺) 산문(山門)으로 들어가는 계곡 언저리,
신라말 문장가 고운 최치원(崔致遠)이 세상 미련을 버린 후 은둔했던 농산정(籠山亭)
제시석(題詩石)에는 천 년 전에 썼다는 최치원의 칠언절구 둔세시(遁世詩)가 있습니다.
첩첩 바위산을 호령하며 미친 듯 쏟아지는 물소리에 (狂噴疊石吼重巒·광분첩석후중만)
사람의 소리는 지척 사이에도 분간하기 어렵고 (人語難分咫尺間·인어난분지척간)
속세의 시비 가리는 소리가 귀에 들릴까 두려워 (常恐是非聲到耳·상공시비성도이)
흐르는 물을 시켜 온 산을 모두 귀먹게 하는구나 (故敎流水盡籠山·고교유수진농산)
‘스스로 그러함(自然·자연)’에서 유난히 거슬러 가는 존재가 인간입니다.
인간 또한 자연의 지극히 작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데,
모든 만물의 주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만들어 내는 소리가 가장 큽니다.
도심의 소음(騷音)은 경쟁과 시비, 그 자체인 것 같습니다.
풀벌레 우는 소리, 바람에 나뭇잎 스치는 소리, 계곡물 흘러가는 소리,
그리고 옛집 풍경(風磬)의 은은한 흔들거림…….
자연의 소리는 서로 조화를 이루며, 모두 제자리에서 제 소리만을 소박하게 냅니다.
자기를 더 쳐다봐 달라는 아우성도 없고, 더 잘났다고 싸우지 않습니다.
국제 분쟁과 이데올로기, 그리고 정치적 정쟁과 회사 파업, 가족재산다툼, 직장 불화…….
노동문제만 하더라도 근로자 입장에서 보면 인권과 생존권의 문제이고,
경영자 입장에서 보면 어려운 경제 여건에서 파업으로 손실까지 보는 회사 존립의 문제.
옳고 그름이 문제가 아닙니다.
자기 입장만 생각한 채, 상대방 목소리를 들으려 하는 아량이 없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결국 얻게 되는 것은 한 가지뿐, 공멸(共滅).
최치원이 남긴 둔세시(遁世詩)를 외웁니다.
달아날 ‘둔’, 끊을 ‘둔’, 피할 ‘둔’입니다.
세상 시비(是非) 가리는 소리 듣지 않으려고 잠시나마 흐르는 물소리를 찾아갑니다.
그러나 휴대폰 벨소리는 그곳까지 따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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