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글
작성자 김정
작성일 2014-07-14 (월) 07:57
홈페이지 http://cafe.daum.net/kim18111
ㆍ추천: 0  ㆍ조회: 840      
IP: 121.xxx.138
< 김쌤의 800자 이야기 > 감자꽃
 < 김쌤의 800자 이야기 > 감자꽃





장마 중 하늘이 비를 참아주는 시간을 이용하여 감자 캐는 모습을 봅니다.

봄 가뭄을 견뎌내고 결실한 감자를 서둘러 캐는 모습입니다.

씨알은 비록 작지만, 기어이 자기 몫을 해낸 감자들.

사람은 시련에 굴복하여 삶을 포기하기도 하지만,

자연은 아무리 고달파도 위험한 순간을 묵묵히 이겨냈습니다.

 

충주에서 태어나 33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시인 권태응(1918∼1951).

일본 유학시절 독서회를 만들었다가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1년간 옥살이한 후,

폐결핵에 걸려 불과 6년밖에 글을 쓰지 못했지만, 남겨진 시는 감동으로 살아 있습니다.

 

   자주 꽃 핀 건, 자주 감자

파 보나 마나, 자주 감자

 

하얀 꽃 핀 건, 하얀 감자

파 보나 마나, 하얀 감자

 

권태응의 대표시 ‘감자꽃’ 전문입니다.

초등 음악 교과서에도 나오는 4행 36자의 쉽고 단순한 노랫말.

우리 기본 가락 4.4 음보의 재미난 리듬이지만, 읽을 때마다 목이 멥니다.

하고 많은 꽃 중에서 왜 하필이면 시의 소재가 감자 꽃이었을까요?

숨은 뜻을 알게 될 때 어느덧 감동이 다가옵니다.



순진하고 애잔하게 보이는 감자 꽃,

수탈(收奪)의 시절, 주린 배를 달래주던 감자이기에 빛깔과 모양도 처연합니다.  

깜깜한 땅속에 묻혀있는 감자 씨알, 그러나 감자 꽃은 태양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태양을 보는 꽃이 있기에 어둠 속 씨알은 점점 굵어집니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밝음과 어둠, 지배자와 피지배자.

결국 우리는 감자 꽃을 통해 해방을 염원하는 ‘권태응’을 만납니다.

 

‘파 보나 마나’,

지극히 당연한 것이 지극히 당연하지 못함을 비꼬는 은유(隱喩)의 알레고리(allegory).

일본인은 일본인이고 조선인은 조선인인데,

창씨개명(創氏改名)까지 하면서 하얀 꽃이 핀 감자를 자주감자라 우겨대는 일본,

그들의 검은 양심을 향해 숨은 붓칼을 들이댄 것입니다.

 

감자 요리가 많이 나오는 계절입니다.

감자조림, 감자국, 찌고, 굽고, 채로 썰어 볶은 감자 요리들과 함께

감자 꽃에 담긴 권태응의 목소리도 함께 들려준다면 더욱 맛있는 요리가 될 것입니다.  



  “얘들아, 일제시대에 권태응이란 시인이 있었는데 말이야, …”

이렇게 말입니다.


  0
3500
    N     분류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83 < 김쌤의 800자 이야기 > 최치원의 둔세시(遁世詩) 김정 2014-08-07 944
82 < 김쌤의 800자 이야기 > 앞으로 가시지요 김정 2014-08-06 831
81 < 김쌤의 800자 이야기 > 회문 (回文, palindrome, 팰린드 김정 2014-07-29 929
80 < 김쌤의 800자 이야기 > 『목민심서(牧民心書)』를 다시 읽.. 김정 2014-07-28 864
79 < 김쌤의 800자 이야기 > '행(行)' 김정 2014-07-26 851
78 < 김쌤의 800자 이야기 > 애절양 (哀絶陽-성기性器를 자르고 .. 김정 2014-07-25 909
77 < 김쌤의 800자 이야기 > 타히티인의 슬픔 김정 2014-07-24 926
76 < 김쌤의 800자 이야기 > 작은 애호박 김정 2014-07-23 917
75 < 김쌤의 800자 이야기 > 물고기 비율(比率) 김정 2014-07-22 823
74 김쌤의 800자 이야기 > 우리 아이는 왜 글쓰기를 싫어할까? 김정 2014-07-21 893
73 < 김쌤의 800자 이야기 > 좋은 글 쓰는 방법 김정 2014-07-19 1073
72 < 김쌤의 800자 이야기 > 덩리쥔(등려군·鄧麗君)의 노래 김정 2014-07-18 1101
71 < 김쌤의 800자 이야기 > 죽는 날까지 하늘 우러러 김정 2014-07-17 916
70 < 김쌤의 800자 이야기 > 대한 청년 윤봉길은 어디 있는가? 김정 2014-07-16 851
69 < 김쌤의 800자 이야기 > 얼굴을 잃어버린 세상 김정 2014-07-15 895
68 < 김쌤의 800자 이야기 > 감자꽃 김정 2014-07-14 840
12345678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