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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정
작성일 2014-08-26 (화)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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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쌤의 800자 이야기 > 가장 훌륭한 복수(復讎)
< 김쌤의 800자 이야기 > 가장 훌륭한 복수(復讎)

 

 

1806년 독일 연방국 가운데 가장 세력이 컸던 프로이센은 나폴레옹에게 패배합니다.

나폴레옹 군대 12만 5천 명, 그리고 프로이센 군대가 11만 5천 명으로

병력 규모에서 볼 때 큰 차이가 없었지만 완벽하게 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프랑스 군인들은 독일의 상징인 ‘평화의 여신상’을 떼어 가고,

나폴레옹과 프랑스 장교들은 빌헬름 3세의 부인에게 차 심부름을 시킵니다.

그리고 강압적인 협상을 통해 많은 독일 땅을 빼앗습니다.

실로 비참한 패배였고, 굴욕적인 협상이었습니다.

종전협상(終戰協商)이 끝난 뒤 빌헬름 3세는 다짐합니다.

"나는 반드시 복수하겠다, 이 굴욕을 씻고 말겠다. 그 방법은 교육뿐이다!"

 

그는 곧바로 전 국민 의무교육을 시행합니다.

그리고 4년 뒤(1810년), 유명한 베를린 훔볼트대학(Humboldt-Universität)을 세웠습니다.

과학과 기술과 교육을 통해 복수하겠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그는 훔볼트대학을 세우면서 다음과 같이 연설합니다.

"정신력으로 육체의 손실을 보완하고, 가난하기에 교육을 해야 한다.

교육 때문에 가난해지는 것을 본 적이 없고. 그런 나라는 망한 적도 없다."

 

그리고 궁전 소유물을 모두 팔아 대학을 지원하며, 공부와 연구에 전념하도록 합니다.

그 후 아인슈타인, 파울 에를리히, 막스 보른, 헤겔, 피히테, 쇼펜하우어 등을 비롯하여

당대 최고의 철학자, 신학자, 과학자, 역사학자, 민속학자 등이 교수로 재직하였고,

많은 공을 세워 노벨상을 29개나 받는 대학이 됩니다.


그 뒤 60년이 지난 1871년 마침내 독일은 통일되고, 교육의 힘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통일 후 40년 동안 석탄과 철강생산량 유럽 1위, 화학공업 생산량 세계 1위,

그리고 1910년에는 독일의 GDP가 유럽의 모든 나라를 추월해 버립니다.

빌헬름 3세가 교육을 통해 나라의 힘을 키우겠다고 다짐한 지 100년째 되던 해였습니다.

 

1871년 독일은 통일 선포식을 프랑스 베르사유궁전에서 하게 됩니다.

심리적인 복수였지요. 통일 선포식 당시 군사령관 한 사람이 이렇게 건배사를 합니다.

“독일의 통일은 초등학교 선생님들의 강단에서부터 결정되었다!”

 

독일의 힘은 교육에서 왔습니다.

빌헬름 3세는 패전한 왕이었기 때문에 국민의 존경을 받지 못했지만,

그러나 세계 초강국(超强國)이 될 힘을 길러주었던 위대한 선견자였습니다.

전쟁 없이 이긴 가장 훌륭한 복수(復讎)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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