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쌤의 500자 이야기 > 향기의 새로운 이름
< 김쌤의 500자 이야기 > 향기의 새로운 이름
노인요양원 복도 창가에 앉으신 할머니는 말이 없으셨습니다.
온종일 의자에 앉아 바깥만 바라보고 계시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할머니의 시선은 산에도 나무에도, 길이나 사람에게도 있지 않았습니다.
일주일 동안 할머니를 지켜보며 내린 마지막 결론은 ‘그리움’이었습니다.
그리움은 희망의 다른 이름이라지만,
할머니의 강물은 나뭇잎 흔들리던 바람 따라서 멀리멀리 흘러갔습니다.
기억의 갈피 속에 담긴 들꽃 향기는 아직껏 쇠퇴하지 않았으련만,
고비마다 여울졌던 젊은 날의 고뇌들도 이젠 모두 빛나는 환희로 다가오련만,
할머니는 푸른 허공에서 그리움을 더듬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돌아서서 울었습니다.
세상 가득히 번지는 향기는
다름 아닌 그리움이다.
비 오는 거리를 통해
한결 간절하게 와 닿는 그
향기의 새로운 이름
그것이야말로 그리움인 것이다
아무도 모를 곳에서
삶과 죽음의 오의(奧義)로
가슴 아프게 피어 외치는 꽃의 향내
모든 바다 꽃, 땅 꽃, 하늘 꽃에
짙은 목숨의 향내
절규하는 존재의 불가사의한 향내
그것이야말로 그리움인 것이다 (세르게이 예세닌 / ‘안나 스네기나’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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