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 쌤의 路邊情談 > 라라의 테마(Lara’s Theme)
< ‘김정’ 쌤의 路邊情談 > 라라의 테마(Lara’s Theme)
핸드폰 수신음을 『닥터 지바고』주제곡 로 바꾼 지 꽤 됩니다.
수신음을 듣노라면 주인공 ‘라라(Lara)’와 ‘지바고(Zhivago)’의 음성이 들리는 듯 하지요.
노란 들꽃을 배경으로 화면 가득히 흐르던 슬프도록 아름다운 ‘라라의 멜로디’,
“남자라면 생맥주 2천CC만 마신 뒤 들어보라. 오랜만에 눈물이라는 것을 소유하게 될 것이다.”
시인 고은(高銀)은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에서 이 노래를 그렇게 평(評)했습니다.
공산주의 혁명이라는 역사의 수레바퀴 밑을 지나는 한 지식인의 비극적 운명,
사회주의 국가를 태동케 한 러시아 혁명의 웅장하고 서사적(敍事的)인 화면 속에서
두 남녀의 사랑은 현실적인 잣대로 보면 분명 ‘불륜(不倫)’이었습니다.
공산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예술과 사랑으로 번민하는 젊은 시인(詩人) 의사(醫師) ‘지바고’.
너무 순수한 영혼이었기에 부르주아(bourgeois)라는 비판 앞에 고뇌할 수밖에 없었고,
어린 시절 부모를 잃은 자신을 돌봐준 은인의 딸로 순종적이며 청순한 아내 ‘토냐’와,
불륜 관계였던 남자와의 관계를 청산하려 권총으로 저격하려다 도리어 상처를 입고
그에게 치료받는 정열적이고 관능적인 ‘라라’와 사이에서 방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내와 아이들은 파리로 망명(亡命)하고, 홀로 빨치산에게 붙들려 징용을 하다가,
공포의 ‘우랄’ 수용소를 탈출하여 모스크바로 돌아와 ‘라라’를 다시 보는 숙명적인 만남.
전장(戰場)에서 군의관과 간호사로 재회하는 상황에서 어느 누가 윤리만을 고집할 수 있을까?
상처 입은 ‘라라’를 추잡한 치정(癡情)사건의 천박한 여자 정도로 애당초 치부했다면,
전쟁터 재회에서 유부남, 유부녀로서의 굳건한 상식과 윤리의 틀을 붙잡고 있었다면,
책을 읽는 독자나, 영화·뮤지컬을 보는 누구도 그들에게 연민을 느끼지 못할 것입니다.
성적(性的) 과거와 혁명 전선으로 떠나간 남편 사이에서 외롭고 불행했던 ‘라라’였기에,
그리고 언제나 외롭고 순결한 ‘지바고’의 영혼이었기에 그들의 만남은 꿈같았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아름다움이 그렇듯, 인생에서 행복도 무지개와 노을처럼 짧을 수밖에.
아니 어쩌면 짧기 때문에 우리가 행복하다고 느끼게 되는지도 모릅니다.
기독교적 세계관을 가진 ‘지바고’에게 볼셰비키 혁명은 처음부터 오산(誤算)이었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떠나보낸 뒤, 멀고 먼 동시베리아 이르쿠츠의 ‘라라’를 애타게 그리며
홀로 남아 몸부림치는 고독, 그리고 병든 몸에 힘없는 목소리로 ‘라라’를 부르는 ‘지바고’의 음성,
온통 은세계가 된 자작나무 숲 너머를 응시하는 지바고의 물기 어린 눈빛.
내전 후 모스크바에 돌아온 ‘지바고’는 차창 밖으로 꿈에도 잊지 못했던 ‘라라’를 봅니다.
부랴부랴 전차에서 내려 라라를 부르며 뒤따라가지만 심장 발작이 일어나 쓰러지고,
사람들은 ‘지바고’ 주위에 몰려들지만, ‘라라’는 제 갈 길만 갑니다.
‘Somewhere my love there will be songs to sing (그대여, 어딘가에 노래가 있을 거예요.)
Although the snow covers the hope of Spring (비록 눈이 봄의 희망을 덮고 있어도 말예요.)’
두 사람의 슬픈 사랑의 이야기를 오늘도 전화 신호음을 타고 몇 번이나 들을 수 있을지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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