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김씨와 김해김씨에 대해
경주김씨와 김해김씨 모두 김일제의 후손이다.
경주김씨는 김일제의 첫째 아들인 김홍의 후예이며,
김홍이 바로 아들없는 해부루에게 입양되었다고 기록된 동부여의 금와왕이다.
그 후손이 대소 대불로 이어졌고, 대불의 손자로 판단된다. 신라에 AD56년 왔으며, 이때의 호공이 바로 성한왕이다. 성한왕(星漢王)이란 뜻은 星은 解씨, 漢은 金씨 임을 나타낸다. 해씨와 김씨의 왕손이란 뜻도 된다.
김홍은 해부루의 딸 해영解英과 BC73년에 혼인하였고, 그 후손들은 당연히
김씨와 해씨의 후손이기 때문이다.
성한왕이 바로 김알지란 주장이 있는데, 알지가 아이라는 뜻이라고 하였으니
김알지가 바로 자살한 것으로 기록된 호동왕자인 것이다.
즉 경주김씨의 시조는 대주류왕(대무신왕)의 아들로 기록된 호동왕자인데.
그의 실체는 김일제의 후손이며, 금와왕(김홍)의 후손이었던 것이다.
김해김씨의 시조는 김수로왕인데,
그는 왕망의 신나라에 함께 있었던 김일제의 후손이다.
본명은 김탕(金湯)이며, 고구려에 있다가 박혁거세가 물러나기 1년전인
AD41년 9월에 경주에 온 사람이다. 대륙에서 있었기에 세상살이에
밝았다. 그와 결혼한 허황옥은 고구려 왕실과 친척이었던 황룡국의 왕녀이다.
고구려왕의 지시를 받고 가락국으로 건너와 김탕과 혼인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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